"반상반의" 조금은 생소한 말이지만 뜻을 해석하면 이해가 갈것이다.
안경사라는 직업에 있어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이단어는 다름아닌 일본 기쿠치 안경원의 신조이자 사훈이다.
기쿠치라는 단어는 애지현에 있는 지역이름이고 창업자 모리상의 고향 지역명에서 따왔다.
1920년에 나고야시에 처음으로 안경원을 열었다.
안과의사였던 모리상은 항상 안경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고 한다.
안과적 질환도 중요하겠지만, 실생활에 있어 더욱 필요한 안경.... 이안경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하면 좀더 편하게 사용할수 있을까를 고심하여
그당시 유명한 안경장인들을 수소문 해 나고야에 안경원을 연것이다.
2차세계대전에 맞물려 물자가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며 매장이 확대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던것같다.
1952년에 기쿠치를 주식회사로 만들고 본격적으로 체인점으로 가는 수순을 밟게 된다.
동해지역과 관서지역을 중심으로 안과의사가 만든 안경원....... 검안을 제대로 하고 눈이 불편한 사람들이 좀더 편하게 사용할수 있는 안경을 맞춰주고자 ...
체인점으로 뻗어나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즉 인재들
그래서 1978년 기쿠치 안경전문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처음의 목적은 기쿠치 안경원에 인력을 조달하기 위함이었으나 이것이 점점 퍼져 일본 안경기술사 협회와 일본 옵토메트리 협회를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쉬운것은 일본은 아직까지 안경사가 국가 면허증 제도가 아니라는것이다. 안경 강국의 모순이기도 하고 일본 안경이 더욱 발전하는데 있어 장애물이 되고 있다.
2002년 당시 (유학당시) 기쿠치 안경원은 검안 중심의 안경원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었으며, 안과 처방전을 받지 않은것으로도 유명하였다.
이로인해 안과협회와 마찰이 있었는데, 설립자가 안과의사라는 점에서 이것도 아이러니컬 하면서도 굴절검사에 있어서의 안경원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당시 전국에 160개 정도의 매장이 있었으며 , 매출도 연3000억이 넘었으므로 안경원 파워가 와~~~~(당시 점포수 전체 7-8위) , 현재는 150 점포 내외이다.
우리나라는 의료법규상 안경사는 처방전을 발행할수 없게 되어있다. 하지만 처방전만 발행할수 없을뿐이지 안경사가 검사한 값으로 안경은 맞춰진다.
처방이라는 단어와 판매라는 단어, 이 두단어가 공존하는 곳이 안경원이다.
옛날에는 소위 어깨넘어로 배우는 기술( 도제식 지식습득)로 밥을 먹고 살았던 안경사라는 직업이 이제는 기본적으로 안경학과를 졸업하고 국가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럼 과연 옛날에 비해 안경에 대한 마음가짐과 실력은 올라갔을까? 의문이 든다.
지금도 판매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수있고,그전까지의 모든 과정은 판매를 위한것처럼 보여질수 있으나
앞으로의 시대는 아닐꺼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다.
관심이 있으면 노력을 하고 노력을 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재미있게 된다.
내가 매번 검안교육중에 하는 말이다.
상대의 눈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면 일단 실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실력은 우직하고 인내를 가지고 노력해야만 쌓이는것이다.
정답은 없겠지만, 마음가짐은 반상반의 그리고 이를 실천하려면 항상 깨어있고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할것이다.